‘뉴 애브노멀(new abnormal)’이란 말이 있다. ‘새로운 비정상’으로 해석되는 경제 용어다. 종전의 잣대로 예측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가 고착’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요즘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 현상인 ‘저금리와 고물가 병존’이 그중 하나다. 즉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는 현상이다. 종전에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저금리 정책을 썼다. 물론 정책 효과가 있었다.

뉴 애브노멀은 경제 현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의 정치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법원 최종심을 앞둔 피의자의 정당 창당, 거대정당의 위성 정당 창당, 의원 빌려주기, 셀프 공천과 국회의원 당선……. 당리당략이 만든 ‘비정상’이다. 비정상을 배태한 누적된 한국 정치의 모순을 보여주는 극단적 사례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급기야 ‘비정상’이 제도화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다. 민주당이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법’을 만들고 있다.

민주당은 ‘당 대표 1년 전 사퇴 규정’(당헌 25조), ‘기소와 동시에 부정부패 연루자 공천 금지 규정’(당헌 80조)를 개정에 나섰다. 또 신설항목도 있다. △당론을 위반시 공천 배제(신설항 1)와 권리당원에게 국회의장 및 원내대표 선거의 투표권 20% 부여(신설항 2) 등의 명문화가 추진되고 있다.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려면 선거일 1년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게 현행 당헌 25조다. 이 조항에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변경할 수 있다’라는 예외 규정을 두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상당한 이유’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전국단위의 선거’와 함께 ‘대통령 궐위’를 장경태 최고위원이 언급됐다. ‘대통령 궐위’와 관련, 채상병 특검 재추진과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까지 내다본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헌 80조는 아예 폐기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개정 내용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 수 없다. 당헌·당규가 불변의 가치도 아니다. 시대와 의식의 변화에 부합하도록 바꾸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당헌이 소속 정당 구성원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고 불편부당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면 문제다. 누구에게 불리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누구에게 유리하게 이용될 여지가 있어서도 안 된다. 그렇지 않다면 불순한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하물며 누군가가 정당의 헌법인 당헌 위에 군림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헌으로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당헌 위에 이재명 대표가 있다. ‘이재명을 위한 위인설법(爲人設法)’, ‘이재명 맞춤형 당헌 개정’이라는 얘기다. 당헌 개정으로 이득을 보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이재명 대표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대표는 민주당 내에서 독보적인 아니 유일한 차기 대표 후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표의 잠재적 차기 대표 경쟁자는 4·10총선 과정에서 완전히 제거됐다. ‘친명횡재’, ‘비명횡사’가 이를 상징한다. 심지어 이 대표와 대적은 고사하고 이번 당헌 개정에 대해 반대한 비명계 의원은 한 명도 없다. 지난 30일 의원총회에서 이름조차 밝혀지지 않은 한 친명계 의원이 이의를 제기했다고 전해질 뿐이다. 차기 대표는 이 대표가 따 논 당상이다. 

이미 이 대표 연임 추대가 착착 진행되는 듯하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대표 연임론에 군불을 지폈다. 그러자 박지원·정성호·장경태·김인수 의원 등이 이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이미 대세론을 넘어 연임 절차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작업이었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민주당은 4·10총선을 채 6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지난 11월에도 당헌을 개정했다. 전당대회의 당 대표 및 최고위원 투표에서 대의원 반영 비율을 줄이고 권리당원의 방영 비율을 크게 확대했다. 이 대표의 장기적 포석이었다. 이 대표가 당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있다면, 굳이 이 대표의 우군인 권리당원을 권한을 강화하는 당헌을 개정을 굳이 공천을 앞두고 했겠느냐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사실상 오는 8월 대표 출마를 염두에 둔 당헌 개정이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하면, 이 대표의 결단만 남았다는 것이다. ‘결단=당선’임을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 대표가 차기 대표가 되면, 개정된 당헌 25조에 의해 임기를 2026년 3월 이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어쩌면 대선 후보 등록 때까지 대표직을 행사할 수도 있다. 그것은 곧 2026년 5월에 있을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도 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지방선거 후보 공천을 통해 또다시 한번 이 대표를 중심으로 줄 세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줄 세우기를 다르게 표현하면, 이 대표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조직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양성이 존재할 여지가 없어진다. 당헌 25조 개정은 ‘이재명의 민주당’ 즉 이재명 1극의 민주당을 완성하는 제도의 마무리인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당헌 80조는 아예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 ‘부정부패 연루자는 기소와 함께 공천을 금한다’는 내용을 삭제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 비리가 발생한 보궐 선거를 앞두고 만들어진 조항이다. 선거용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민주당은 전당원투표를 통해 이를 뒤집어서 논란이 됐다. 이런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이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민주당의 의도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민주당이 시쳇말로 자기의 죄를 잘 아는 이 대표를 구제하기 위한 당헌 개정이라는 얘기다. 이 대표는 변호사다. 자신의 저지른 각종 혐의의 위법성 여부는 물론 형량까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더욱이 재판까지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1심 선고가 오는 7일 있다. 만일 이 부지사의 유죄 선고가 난다면 이 대표 역시 유죄 가능성이 크다. 기소와 재판 추가를 피할 수 없다. 또 위증교사 등 3개 재판도 최근 속도를 내고 있다. 만일 대선 후보 결정되기 전 이 대표가 다시 기소되더라도 이 문제로 당의 분열이나 내분이 일어나는 것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방법을 당헌 개정에서 찾은 것이다. 제도로 혹시라도 불거질지 모르는 사법리스크 과정에서 철저한 방어벽을 친 것이라는 의미다. 민주당은 이미 불편한 논란이 시달린 일이 있다. 지난해 8월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당헌을 바꿨다. 기소와 동시 직무가 정지된 이 대표의 구제 여부를 심사하는 기구를 윤리심사심판원에서 당무위원회로 바꿨다. 이 대표가 당무위원회를 주재한다. 당연히 ‘셀프 구제’, ‘자기 면책’이라는 비난을 일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해 9월 구속영장 심사에서 기각 사유가 바로 ‘당 대표’였다. 유창훈 판사는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증거인멸의 염려가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결했다. 이 대표를 위한 안전장치는 여기에 그치는 게 아니다. 지난 국회의장 선거에서 ‘명심’은 작동하지 않았다. 채상병 특검법 투표과정에서 민주당 의원의 이탈표가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표결 결과였다. 리더십을 지키면 자그마한 변수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만일 이 대표가 아닌 제2의 대표가 대선 관리를 한다면 지방선거 공천은 물론 대선 경선 관리가 꼭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당론에 강제성을 부여한 ‘신설항1’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각자가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은 소신과 양심에 따라 국가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소명이 있다. 그것이 법안이든, 투표든, 의견 개진이든 막론하고 그렇다. 그런데 당론을 어기면 공천에 불이익을 준다는 건 공직 출마 예정자에게 입을 틀어막는 ‘불법’이다. 의무를 불법화한 것이다. 무슨 공직 출마자를 당의 거수기로 만들 요량인가. 신중한 법률적 검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신설항2’은 권리당권의 권한 강화 조항이다. 당원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이 대표로선 충분히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당직이 아닌 국회직 선거에서 권리당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게 맞느냐는 논란은 차지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근원적인 의문이 남는다. 당헌·당규 개정이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도움이 될까. 유불리 전망이 엇갈린다. 대선 후보는 될 수 있지만 대통령은 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게 관측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위한 당헌 개정’이 결국 이재명 사당화의 상징적 근거다. 

권력을 쥔 사람은 어떤 형식으로든 권력 강화하려고 한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강화된 권력 행사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면 결코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렵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이재명 대표 연임 찬반’을 묻는 코리아리서치를 포함한 4개 여론조사기관(5월 27일~29일)의 조사였다. 국민을 상대한 결과는 ‘부적격’ 49%대 ‘적격’ 39%, 민주당 지지층에게 얻은 답변은 ‘부적격’ 19%대 ‘적격’ 77%였다. 이 대표가 지난 선거에서 불관 0.73%포인트 차이로 아깝게 졌다. 적어도 27만 표를 더 얻어야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런데 ‘사당화’, ‘1극 체제’로 조롱받는 당헌·당규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을 외면한 채 당원만 보는 정치를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권력 역설’이라는 함정에 스스로 빠져드는 길이다. 권력 역설은 권력을 쟁취했다는 자신감이 장기적으로는 권력 상실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말한다. ‘4·10총선 승리=민심’으로 규정하면서 행하는 정치적 퇴행까지 국민이 용납하거나 수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권력 행사할 때 최소한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한다. 품위까지는 아닐지라도 염치는 지켜야 한다. 국민은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매를 든다. 이 대표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만큼 당당하다면, 당헌·당규를 개정도 하고 대표에 재선 되어서 지방선거 후보 공천하라. 국민은 기억하고 있다. 이 대표가 이번에 당헌·당규를 개정하는 과정에서 삭제하려는 80조 당헌·당규에 예외 규정을 만들어 대표직을 유지했던 지난해의 일을 기억한다. 지도자로 인정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다. 지과필개(知過必改·잘못을 알았을 때 그것을 반드시 고침)가 큰 지도자로 거듭나는 첩경이다. 4·10총선에서 민주당에 절대다수 의석을 준 국민의 뜻은 윤석열 정권과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서다. 윤석열 정권은 대선 승리와 지방선거 압승을 거뒀다. 자신감이 넘쳤을 것이다. 국민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임기를 갓 2년을 넘기 시점에서 레임덕을 걱정하고 있다. 여전히 국민을 무시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하지 못하면, 이 대표나 민주당도 윤석열 정권의 길을 따라갈 것이다. 이 대표의 대통령은 고사하고 민주당의 폭망이 기다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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