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당헌을 개정해서 지명직 대표를 세워라.”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7·23 전당대회는 갈수록 가관이다. 친윤 세력의 ‘한동훈 찍어내기’가 도를 넘고 있다. 공정경선을 서약한 경쟁 후보도 한 후보를 향한 ‘집단공격’ 퍼붓고 있다. ‘당원의 축제’라는 전당대회 본래의 의미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당 대표 선출을 둘러싼 전대미문의 ‘끝장 드라마’가 연출되고 있다.

급기야 친윤 세력은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를 전당대회에 소환했다. 김 여사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공개한 것이다. 지난 1월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던 한동훈 후보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다. 김 여사가 명품백 수수와 관련해 문자로 대국민 사과 의사 입장을 당시 한 위원장에게 전달했다는 내용이다.
사실 이 문자는 이미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다. 추가로 4개가 더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지난번 공개에서 논란이 되지 않던 게 다시 불거질 이유는 무엇일까. 논란의 본질 이해를 위해선 당시 상황을 알아야 한다. 메일을 보낸 시점은 윤·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다. 김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비대위원장이던 한 후보의 사퇴 요구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윤 대통령의 국정 사유화 논란까지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 여사가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것이다. 한 후보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에 대한 회신을 일절 하지 않았다(읽씸).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한 후보의 얘기대로 공적 채널로 소통했다면, 굳이 사적 채널을 통해 자신의 양해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고 본 것이다.
한 후보의 해명은 먹혀들지 않았다. 진실 공방이 제기됐다. 공적 라인에 있던 한 용산 한 관계자에 의해 “당시 한 위원장으로부터 김 여사의 사과를 요구가 없다”라고 밝혔다. 한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지루한 진실 공방에는 특징이 있다. 정보가 부족할 때 벌어진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문자는 친윤 인사로부터 입수한 언론기관이 재구성한 것이다. 재구성된 문자에서는 분명히 김 여사가 사과 의사를 밝혔다. 한 후보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맥락은 그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 후보는 이어 “사과하고 싶었는데 내가 회신을 안 해서 사과를 안 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반박하면서 “사과를 나한테 하는 게 맞느냐”고 반문했다.
진실 공방은 결국 문자 공개를 둘러싼 공방으로 이어질 것이다. 문자 공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설령 진실 규명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김 여사는 문자를 공개할 수 없다. 문자를 공개하는 순간 김 여사는 스스로 전당대회 개입을 만천하에 공언하는 것이다. 즉시 역풍을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 후보도 공개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한 후보는 “보낸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받은 사람이 공개할 수 있겠느냐”라는 입장이었다. 그것도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대통령의 부인이다. 결국 진실 공방이 격화될 수 있어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논란의 본질도 묻힌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실 공방은 해석의 영역이 된다. 논쟁의 당사자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고 한다. 왜곡하고 변형할 것이다. 논란은 논란으로 확대재생산된다. 불행하게도 이 파장은 전당대회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 제기된 ‘읽씹 논란’은 전당대회 한 가운데서 벌어졌다. 김 여사의 문자가 ‘배신 프레임’을 갇힌 전당대회에 기름을 끼얹었다. 당권경쟁이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로 전화했다. 세게 붙은 것이다. 전장의 전사는 ‘친윤 세력’과 ‘친한 세력’이다.
친윤 세력은 마치 승기를 잡은 듯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어떻게 김 여사의 문자를 5번이나 ‘씹을’ 수 있냐’(무례=배신), ‘김 여사가 사과했으면 총선에 지지 않았을 것이다’(총선 패배 책임), ‘그 정도의 정무적 판단도 할 수 없는 한 후보가 대표가 되면 안 된다’(정치력 부재), “결국 윤 대통령은 탈당하게 될 것이다”(전대 이후 당정 갈등)라며 한 후보를 몰아세우고 있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친윤 일각에서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포착됐다. 친윤계 원외당협위원장이 총선 패배의 책임을 묻어 한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다. 물론 기자회견은 무산됐다. 잘못했다면 지난해 3월 전당대회의 ‘연판장 사태’가 재연될 뻔한 것이다. 자기확증편향적 해석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 부인과 여당 최고 책임자가 사적인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공직자 신분이 아닌 영부인이 정부·여당 인사들과 직접 접촉하는 게 바람직 한 것인가’와 같은 논란의 본질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본질에 벗어난, 제기할 수 없는 소재까지 서슴지 않고 동원하고 있다. 친윤 일각에서는 ‘당 윤리위 심의’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윤리위에서 해당 행위로 판단, 당원권을 정지시키면 대표 출마 자격을 잃는다. 묻고 싶다. 한 후보가 어떤 도덕적 지탄받고 당의 징계를 받을 만한 일을 했는가. 전화를 ‘읽씹(읽고 회신하지 않음)’한 게 죄인가. 김 여사가 사과할 생각이 있었다면 윤 대통령 그리고 정무팀과 의논해서 사과하면 그만인 일이 아닌가. 굳이 한 후보에게 거듭해서 묻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닌가. 정말 한 후보가 사과에 긍정적인 회신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윤 대통령의 격노는 진노로 바뀌었을 것이다. 김 여사의 문제를 지적한 김경율 전 비대위원의 편을 들었다고 한 달도 되지 않은, 윤 대통령 자기가, 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한 한 후보를 비대위원장에서 물러나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과 문제가 있다면 김 여사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논리가 한 위원장 측에서 제기하는 용산의 당무 개입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왜 하필 전당대회 한 가운데서 5개월이나 지난 문자를 끄집어냈느냐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이라는 대세론을 흔들기 위한 모종의 의도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의혹의 제기다. 친윤 인사가 한 후보를 찍어내기 위한 ‘공작’을 벌인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그게 사실이라면 한 후보 당선을 바라지 않은 후보와 연계되어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한 후보 진영에서는 7일 주도적 인물에 대한 이름까지 거명했다. 한 후보 캠프의 총괄상황실장인 신지호 전 의원은 “이철규 의원이 총선 패배 원인을 언급하면서 김 여사의 문자 내용을 거론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친윤 인사가 한 후보를 찍어내기 위한 ‘공작’을 벌인 것이라는 의미로 들린다. 금도를 넘어선 것이다. 신 전 의원의 발언은 지금까지 점철된 ‘윤심 논쟁’을 격화시킬 것이다. 어쩌면 지금부터 권력 암투가 본격화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걱정된다. 그것은 결국 한 후보가 차기 대표가 된다고 한들, 그 앞에 험로를 자초한 행위다. 한 후보는 차기 대표로서 어디서 당 운영의 동력을 찾을 것인가.
흔히 전당대회를 ‘당원의 축제’라고 말한다. 혁신과 개혁으로 나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 당원 화합의 장이기 때문이다. 과연 진흙탕 싸움을 방불케 하는 이런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미래를 볼 수 있는가. 과연 역대 사상의 참패한 집권 여당으로 절박성이나 절실함조차 느낄 수 없어 안타깝다.
향후 김 여사의 문자 논란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게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쇄신과 개혁의 경쟁을 해라. 작금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집권당으로서 자격이 없다. 과연 국민의힘 정권을 맡기면 괜찮겠다는 믿음이 들지 않는다. 믿음을 갖겠는가. 바뀌어야 한다. 바로 전당대회가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한다. 전당대회가 이른바 쇄신전당대회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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