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당권주자 사이의 공방이 날카롭다. 난타전을 방불케 한다. 귀를 의심케 하는 비방도 오가고 있다. ‘배신의 정치’(원희룡)와 ‘정치공학’(한동훈)이 그것이다. 특히 배신의 정치는 국민의힘에서 금기어로 통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트라우마를 되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이 되면 늘 뛰어나온 ‘정치공학적 언어’였다. 이준석·나경원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이 ‘배신의 덫’에 걸려 쓰러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국민의힘 유승민 전의원 모습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과 국민의힘 유승민 전의원 모습

벌집은 ‘친윤 후보’를 자처하는 원희룡 후보가 건드렸다. ‘배신의 정치’ 발언은 전당대회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배신 프레임’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배신 프레임’으로 인해 이번 전당대회의 체급이 급상승했다. 경선 과정이 차기 대권 레이스로 바뀌었다.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윤석열 대 한동훈의 대결 구도’가 됐다.

이런 대결 구도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한동훈의 대세론’을 차단해야 한다. ‘배신 프레임’은 본질은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 흔들기’다. 한동훈 대세론 비틀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배신의 정치’는 한 후보의 정체성과 맥이 닿아 있다. 한 후보가 제안한 ‘채상병 특검’의 조건부 수용은 해당 행위라는 인식이다. 그런 인식의 밑바탕에는 윤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배신자를 색출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사고가 있다. 

원 후보의 언급은 의도된 것이다. 그는 “(대통령) 인기가 떨어진다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하면 안 된다”라면서 “배신의 정치, 계산의 정치가 모두를 불행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는 한 후보를 겨냥한 것이다. 인신공격성 발언은 ‘당과 정부는 한마음’이라는 당정일체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친윤 세력의 조직적 지원을 호소하는 말이다. 친윤 세력 일각에서 한 후보를 가리켜 ‘절윤’이라는 표현을 썼다. 윤 대통령과 한 후보 사이에 신뢰가 깨졌다는 의미다. 관계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절윤’의 원인이 바로 ‘배신’이다. 친윤 세력과 당원의 심정을 대변한 말이다. 당연히 친윤 세력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당원을 결집할 수도 있다. 자극적 표현일수록 효과는 큰 법이다. 

친윤 세력에겐 한 후보에 대한 앙금이 있다. 한 후보에 대한 친윤 세력의 불편한 심경은 무엇일까. 윤 대통령이 없다면 오늘날 한 후보는 없다는 게 그들의 인식이다. 중간 검찰 간부에 불과하던 한 후보를 법무부 장관에 앉혔다. 파격적 인사였다. 친윤 인사의 말처럼 법무부 장관 시절 나름대로 한 장관은 돋보이는 정치인이었다. 그의 인물평에 전제가 있다. “싸울 때만 돋보인다”라는 게 그것이다. 한 후보의 총구를 윤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래도 윤 대통령은 또다시 한 후보에게 신뢰를 보낸다. 총선 총괄책임자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발탁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반대를 무릅쓴 결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 후보는 이때부터 당정 거리두기가 나타났다. 나름의 ‘한동훈 정치’를 모색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명분은 민심 우선 정치였다. 국민 의사와 상관없이 윤 대통령과 스탠스를 맞추는 게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어떻든 국민의 요구에 따른다는 명분 아래 용산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반윤 행보’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눈에 띄는 행보는 세 가지다. ‘김건희 명품백 사건’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한 김경률 전 비대위원을 두둔했다. 언론탄압을 암시하는 실언한 황상무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의 퇴진을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호주 대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출국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소환을 요구했다. 

윤 대통령과 한 후보 사이 신뢰의 둑은 무너졌다. 한 후보가 미래 권력으로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더 나아가서 거리를 두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거기다가 한 후보가 총선 패배의 책임지기는커녕 당권에 도전했다. 출마 일성이 ‘채상병 특검 조건부 수용’이었다. ‘채상병 특검’은 윤 대통령을 탄핵의 늪으로 빠질 수 있는 민주당의 공격포인트다. 어떻든 일련의 행보는 윤 대통령의 뜻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윤 대통령은 한 후보의 정치적 후원자였다. 한 후보는 누구보다 사랑과 혜택을 많이 받았다. 그런 한 후보가 어떻게 윤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느냐는 게 친윤 세력의 생각이다. 친윤 세력은 한 후보의 행보를 ‘브루투스의 칼’로 여긴다. 브루투스의 칼은 ‘배신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한 후보를 단칼에 베어낼 수 있는 상황도 못 된다. 총선 패배로 윤 대통령의 리더십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국정운영 능력이 소진된 상태다. 국민의힘의 새로운 지도부 도움이 절실하다. 만일 차별화 전략을 든 한 후보가 당선된다면 현재와 미래 권력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지지율 회복이 난망한 상태에서 지지층의 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임기가 거의 3년이나 남았다. 레임덕이 가시화될 것이다. 결국 보수의 재편도 피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를 수도 있다. 거기다가 일극 체제를 갖춘 이재명의 민주당이 버티고 있다. 103석의 소수 여당이 거대 야당에 맞서기도 벅차다. 아니 윤 대통령의 방어막이 될 수 없다. 향후 국정운영이 만만치 않다. 이 같은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면 당 대표라도 우군이어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일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할 때, 친윤 세력이 한 후보를 불편하게 여기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경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 한 후보 낙마를 주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것이다. 하지만 노골적인 비토크라시는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잘못하면 대세론을 굳히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와 상황을 아는 비한동훈파 인사가 한 후보를 우회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지사, 부산의 김대식 의원과 장재원 전 의원 등은 한 후보와 면담을 거부했다. 노골적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당원에게 영향을 주려는 의도다. 일부 인사는 ‘한동훈 대표’가 되면 윤 대통령이 여당을 탈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흘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탈당하면 타격을 받는 건 국민의힘이다. 위기를 조장함으로써 당원 결집을 꾀하는 전략으로 보인다. 옹졸하다. 이 같은 일련의 정치 행위는 사실상 ‘배신의 정치’에 동조하고 특정인을 ‘배신자’로 낙인찍어 배제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떻든 일각에서는 이 같은 친윤 세력의 행태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만일 한 후보의 독주가 이어진다면 지난번 전대에서 ‘김기현 대표 만들기’처럼 ‘보이지 않는 손’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히려 작용에 반작용을 낳을 것이다. 윤 대통령을 돕기는커녕 해를 끼치게 될 것이다.

원 후보에게 묻고 싶은 생각이 하나 든다. 윤 대통령의 생각에 맞서는 게 배신인가. 원 후보도 며칠 전 방송에 나와서 윤 대통령과 책상을 치면서 논쟁을 벌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원 후보도 배신자임을 고백한 것이 아닌가. 원 장관은 스스로 ‘배신의 프레임’에 영광스럽게 갇힌 이유는 무엇인가. 소신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정책적 원칙과 정치철학을 지키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원 후보 자신은 되고 한 후보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직 경선은 2주일 넘게 남았다. 당내 과열 경선의 부작용은 크다. 당외 경쟁보다 더 크다. 내상은 오래 간다. 그 원인 제공자로 원 후보자가 지목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원 후보가 대표에 당선된들 그 후유증을 감당할 수 있을까. 매우 우려스럽다.

인간은 누구나 배신의 경험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경험자라면 배신에서 비롯된 심리적 충격을 잊지 못한다. 배신은 배반을 전제로 한다. 상처와 아픔이 오래 가는 이유다. 배신을 치유하고 신뢰가 회복되기 어렵다. 끝내 파멸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배신은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꼭 사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배신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 후보가 되어 배신을 변명해 보자. 한 후보가 친윤 인사의 말처럼 최고 권력을 배신했다고 하자. 궁금하다.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한 후보는 ‘정치검사’였다. 누구보다 권력의 쓴맛을 안다. 그가 직접 다뤘던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를 통해 권력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도 직접 체험했다. 그럼, 왜 그처럼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일까.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와 나경원후보, 윤상현 후보, 그리고 한동훈 후보의모습(좌로부터)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와 나경원후보, 윤상현 후보, 그리고 한동훈 후보의모습(좌로부터)

국민의힘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으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한 후보의 전략이 미숙했다. 수직적 당정관계와 윤 대통령의 독선도 한몫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공정 코드’가 내로남불로 드러나면서 민심을 떠났다. 가장 중요한 선거 패배 원인으로 지목된 사안이다. 국민이 야당을 지지한 것은 뒤집어 말하면 국민의힘의 개혁을 주문할 것이었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선거 패배 이후 성찰과 반성이 없다. 국민에게 다가가려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직후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약속했다. 정치를 안 해서 총선에 졌다는 얘기였다. 국민은 대통령의 말을 믿었다. 국민은 윤 대통령의 정치를 기대했다. 그런데 그가 던진 ‘정치 언어’마다 용산과 국민의힘 사이에 수직 사다리가 놓여 있다. 수직적 당정관계를 전제한 것이었다. 일례로 선거 “소수 여당이 됐다고 기죽지 마라”라면서 “거부권을 야당과 협상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라”라고 말했다. ‘내가 앞장서 나갈 테니 당은 따라오라’라는 얘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선거 패배의 원인을 온통 한 후보에게 뒤집어씌웠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방치할 수 없다, 방치한다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게 한 후보의 논리다. 그러면서 배신의 정치에 대응한 발언이 ‘정치공학’이다. 그는 ‘배신의 정치’에 대한 코멘트를 요청받고 “정치공학이 이기면 우리, 모두가 불행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공학’이라는 용어는 박정희 정권 때 비서관과 특보를 지낸 주관중 전 경희대 교수가 처음으로 쓴 정치용어다. 그는 같은 이름의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정치공학의 영어식 표현은 ‘Political Engineering’이 아니다. ‘Political Manipulation’이다. 이를 해석하면 ‘정치 조작’, ‘정치공작’이다. 정치를 본질이 아니라 조작 기술로 보는 것이다. 배신의 정치 언급이 곧 윤심을 앞세워 줄 세우기라는 얘기다. 이번 경선에서는 윤심의 세분화 현상이 벌어졌다. 정치공학적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친윤, 비윤, 반윤, 보윤, 업윤, 절윤……. 여기에 민심이 들어갈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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