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현숙 기자]= 촛불중고생시민연대와 전국중고등학생대표자·학생회협의회가 3일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내놓은 가운데 교육부가 학생들의 안전을 구실로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는 추모집회 참여를 막고, 체육행사 등 일상활동까지 제지시키려 한 것으로 확인됐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이 분향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유가족이 분향을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치권과 학교 현장 등에서는 ‘조용한 애도’만이 최선은 아니라면서 교육부의 지침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던 '세월호 참사' 때의 메시지를 생각나게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아울러 교육부가 이번 참사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생각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수용하는 과정을 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일어난 이태원 참사에서 서울 지역에 재학중인 중고생 6명과 경기·서울·울산 지역 교사 3명이 사망했다. 결국 이를 구실로 학생들의 정상적인 일상생활과 추모집회까지 막으려는 움직임이 교육부 윗선의 발언에서 감지된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지난달 30일 시·도교육청과의 긴급회의에서 “일부 단체가 오는 11월5일 개최하려는 ‘중고생 촛불집회’ 역시 학생 안전이 우려되는 행사”라며 “각 시도교육청은 적극적으로 상황을 모니터링해달라”고 주문했다.

장 차관의 발언은 경찰청이 정권 비호를 위해 참사 관련 시민단체 동향 정보를 수집해 만든 내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재조명 되고 있다. 교육부는 국가 애도기간에 행사는 연기를 검토하고, 불가피한 경우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보냈다. 

광주시교육청은 학교로 공문을 보내 ‘축제 및 체육행사 취소 또는 연기, 현장체험학습 때 놀이 위주 체험 지양, 추모 분위기에 부적합한 행위, 소음이 포함된 교육활동 자제’를 주문했다. 각급 학교에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지침은 없이, 하지 말라는 지침만 잔뜩 보낸 모양새다.

교육부는 8년 전인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비슷한 행태를 보여, 세월호 침몰 순간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선내 방송을 학교 현장에서 되풀이한다고 비판받았다. 교육부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일이 지난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는 수학여행 중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초·중·고교의 1학기 수학여행을 중지하겠다고 밝혔었다.

2014년 9월16일에는 추모 행동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시각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노란 리본 달기 등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보내기도 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데이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핼러윈데이 사고 희생자 추모공간에서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 있다

촛불중고생시민연대는 오는 6일 정식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앞두고 학생의 날을 맞아 미리 온라인으로 공개한 선언문에서 "정부는 학생들에게 가만히 슬퍼만 하고 집회에 나와 정부 책임은 묻지 말라고 하고 있다"라며 "교육부는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학생들의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중고생 촛불집회’는 추모의 뜻에서 1주일 연기돼 12일 열릴 예정이다.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일 페이스북에서 "원인 제공은 정부가 하고 아이들에게 책임을 느끼도록 강요하는 윤석열 정부"라고 꼬집었다.

강 의원은 "서장, 용산구청장, 서울시경찰청장, 서울시장, 행안부장관, 국무총리, 국정상황실장, 대통령. 책임은 당신들 몫이다"라며 "지금은 아이들이 겪고 있을 직•간접적 상처를 드러내고, 얘기하고, 함께하는 교육적 접근이 필요할 때다. 그래야 진짜 애도와 진짜 치유가 가능하다"라고 짚었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태원 참사는 제2의 세월호 참사다"라며 "살려달라, 구해달라 112, 119에 신고했음에도... 가만히 있어라. 가만히 있었다"라고 비꼬았다.

서울의 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 전에도 촛불집회가 있었고 2만명 가까이 모여도 사고가 없었는데, 정부의 잘못된 대응으로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부분을 덮고 정부 비판을 못 하게 하려고 새삼 집회 참석을 막으려는 것 같다”라며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했다.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사망자를 위한 합동분향소를 찾은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한 학생이 헌화를 마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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