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 패배는 윤석열 정권의 운명을 가를 변곡점이었다. 총선 패배 이후 윤 대통령이 참모에게 남겼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제 정치하겠다”라는 게 그것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선언’이었다. 어리둥절했다. 그 의미는 정치적 역할을 하겠다는 것일 텐데, 아직 정치적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백일까, 아니면 집권 2년 동안 정치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의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정치적 모색’을 꾀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일까.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선문답이다. 헷갈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제52회 어버이날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2024.5.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https://cdn.newsfreezone.co.kr/news/photo/202405/566660_577479_5437.jpg)
정치는 무엇인가. 정치는 국민을 바라보고 하는 공연이다. 공연의 흥행은 관객이 결정된다. 하지만 흥행 판단 기준은 다양하다. 판단 내용도 계층, 세대, 지역,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의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게 정치의 본질이다. 공통분모는 원심력보다 구심력으로 작용한다. 그때 정치의 영향은 더 커진다. 여러 생각 끝에 필자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치의 중요성을 자각했다고. 서로 의견을 얘기하고 타협점을 찾아갈 때 ‘정치효과’가 커진다. 국정 책임자의 제1 임무는 국민통합이다. 정파나 이념을 넘어서고 정쟁과 대립을 극복하고 국민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정치는 협치와 동의어다. 당연히 윤 대통령의 말씀을 ‘협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정치는 종종 법치(法治)의 대응어로 쓰인다. 그 연장선에 있다면 ‘대통령의 정치선언’은 ‘유연한 법치’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에 의존하는 정치에서 벗어나겠다는 국민의 약속이라는 얘기다. 사실 이런 ‘추정’은 억지가 담겨 있다. 민주주의는 다른 말로 하면 ‘법치’다. 그런데 ‘유연한 법치’를 정치라고 규정하는 게 말이 되는가. 어폐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작금의 상황에서 경직된 법적 사고가 정치 부재의 원인인 것을. 정치가 사법화의 길을 걷고 있다. 중요한 정치 현안조차 사법적 해결을 추구한다. 그 대가는 사법기관의 정치화다. 윤석열 정권을 ‘검찰 정권’이라는 야당의 비난도 결국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다행히 국정 최고책임자가 정치선언을 하고 나섰다. 얼마나 다행인가. ‘정치하는 대통령 행보’도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의 직접 발표와 소개, 영수 회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의 예고, 민정수석실 신설 검토 등이 그것이다. 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윤 대통령의 정치 행위’다. 그중에서도 ‘대통령 정치’를 상징하는 ‘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남이다. 이 대표가 8번째 요구 끝에 ‘영수 회담’이 성사됐다. 용산 대통령실은 늘 “정략적 의도”라면서 만남 자체를 거부했다. ‘정략적 의도’는 사법리스크 회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용산 대통령실은 이 대표는 잠재적 범죄자로 여겼다는 얘기다. 설렁 그렇다 하더라도 이 대표는 제1야당 대표임은 공지의 사실이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만남은 우연이든, 인위적이든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영수 회담은 곧 정치회복의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는 도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이니셔티브로 움직인다. 이니셔티브는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의 지지가 정치의 힘이다. 총선에서 완패한 윤 대통령의 변신은 불가피한 것이다. 총선의 결과는 ‘협치와 소통’을 요구하는 국민의 바람이었다. 게임 환경이 달라졌다. 이해 당사자의 정치적 위상도 바뀌었다.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국정 운영의 협력과 정책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진지하고 생산적 회담이 되도록 윤 대통령이 팔을 걷어붙여야 했다. 그렇지 못했다. 현실 인식도 부족했다. 전략도 없었다. 이 대표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이 대표는 TV카메라 앞에서 지지자에게 해야 할 말을 윤 대통령에게 쏟아냈다. 15분 동안 이 대표가 언급한 의제는 무려 10가지가 넘었다. 가족 의혹 정리를 요구했다. 외국 연구기관을 인용, ‘(윤석열 정부의) 독재화’라는 말도 꺼냈다. ‘예상한 얘기’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은 레토릭이었다. 이 대표가 제기한 의제에 대응하는 데 비공개 회담의 85%(민주당 주장)를 소비했다. 국민이 ‘옳은 국정 방향’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넋두리의 연장선에 있었다. 물론 의견일치는 없었다. 야당과 국민에게 ‘협치와 소통의 대통령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의 기대를 모았던 총리 인선과 관련한 논의도 없었다. 다변가인 윤 대통령은 정치화법에 무지했다.
![5월 1주차 윤석열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리얼미터 제공]](https://cdn.newsfreezone.co.kr/news/photo/202405/566660_577478_5437.jpg)
‘정치하는 대통령’ 행보는 국정 운영 기조 변화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선 인사폭주와 편 가르기 인사, 거부권 행사 남발, 독선적 국정 운영, 수직적 당정관계 집착, 전횡적 당 대표 지명 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상식과 공정의 회복’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것이 바로 ‘윤석열 정치의 회복’이다. 영수 회담에서 그것을 보여주지 못했다. ‘윤석열 의제’가 없었다. 정치력도 부족했다. 비대칭적 여야구도 아래서 국정 운영 방향도 제시하지 못했다. 국정 관리 능력을 의심받았다.
정치는 냉혹하다. 상대편 약점을 파고든다. 윤석열 정권에게 가장 약한 고리는 채상병 특검법이다. 민주당은 이를 직접 겨냥했다. 민주당은 최근 ‘채상병 특검법’을 단독 제정했다. 윤 대통령이 민주당에 되치기당한 꼴이 됐다. 이 특별법은 윤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수사에 개입, 압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듯하다. 불행하게도 드러난 증거나 정황은 윤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 기준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무너진 케이스”라는 지적(이준석 당선자)이 나올 정도다.
거기다가 ‘채상병 사건’은 정치적 진영논리와 무관하게 국민감정을 폭발시킬 요소를 두루 갖고 있다. 채상병은 국가재난 복구 현장에 동원된 병사다. 안전장치조차 없이 실종자 수색작업에 투입됐다. 거기다가 채상병의 사망사건과 관련한 해병대수사단의 월권과 수사단장의 항명, 해병대 수사 기록의 경찰 이첩 과정에서 윤 대통령의 격노와 용산 대통령실 개입 등 국민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정황이 잇달아 드러나고 있다. 그 정점에는 ‘런종섭’이 있다.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호주 대사로 임명, 해외 도피 시도가 그것이다. ‘런종섭’으로 인사권자인 윤 대통령은 이 사건의 관련자가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의 의혹을 증폭시킨 대목이다.
그만큼 폭발력이 크다. 그 휘발성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총선 전에 이뤄진 한 여론조사에서 총선 이후 채상병 특검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67%,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게 19%였다. 같은 여론조사의 국정 지지도에서 잘하고 있다는 지지 의견, 27%보다 8%포인트가 낮은 것이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윤 대통령은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만일 거부권을 발동한다면 채상병 특검 반대의견 수준으로 국정 지지도도 낮아질 수 있다. 그땐 파국이다. 통치불능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거부권 행사를 암시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거부권 행사를 권유하고 있다. 거부권 행사는 결국 법적 대응이다. 강 대 강의 대치다. 국정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윤 대통령의 ‘정치선언’도 물거품이 된다. 윤 대통령도 작법자폐(作法自斃·자기가 만든 법에 자신이 불행을 당함) 상황에 빠질 것이다. 해병대 수사대의 월권 논란이 결국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경직된 법적 사고와 반정치적 검찰 정치가 낳은 결과다.
위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정치력이 더욱 요구된다. 아직 시간은 있다. 거부권 행사가 윤 대통령의 오만함을 소환의 실마리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민심은 오만을 싫어한다.
윤 대통령의 정치력 회복을 위해선 국민의힘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 대통령 눈치를 볼 게 아니다. 정국 타개 해법을 조언해야 한다.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톡톡히 해야 한다.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진정성을 보일 수 있도록 조언해야 한다. 마침 다음 주에 윤 대통령의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이 있다.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면 윤 대통령에겐 정치다운 정치를 할 수 없는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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