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주년 기자회견··· "사즉생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낼 것"
위기의 대한민국, 이재명의 단식과 김대중 김영삼 단식투쟁의 역사

[서울=뉴스프리존] 최문봉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일, 오전 11시 국회 본관에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정부의 무능폭력정권에 맞서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 투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국회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국회에서 취임 1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즉생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이 대표는  "윤석열 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첫째, 대통령은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국민께 사죄하고 국정방향을 국민 중심으로 바꾸라. 둘째,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국제해양재판소에 제소하라. 셋째,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을 단행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 대표는 "국민 앞에 선언한다. 오늘부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며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고 피력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1일 민주주의 파괴를 막겠다면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1일 민주주의 파괴를 막겠다면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투쟁(斷食鬪爭, Hunger Strike)은 단식으로 하는 시위를 통해 투쟁하는 방식을 말한다. 보통은 물은 마시되 다른 음식은 일절 입에 대지 않고 특정한 사안에 대해 시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물을 마시는 경우도 있고 약간의 무엇인가를 더 먹어야 한다. 왜냐하면, 나트륨을 섭취하지 않으면 사람의 몸이 3일도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은 소금이나 간장을 섭취해야만 하고 실제로 단식을 하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방법을 선택한다. 

이재명 대표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통해 단식투쟁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단식투쟁을 카드를 꺼내들며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이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세 가지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첫째, 민생파과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둘째, 일본 핵오염수 투기에 대한 반대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셋째, 전면적인 국정쇄신과 개각단행 등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재명 대표의 요구가 관철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야당대표로서 무너지는 국가를 마냥 지켜볼수만은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으로 과거 민주당의 야당시절 김대중과 김영삼의 단식투쟁이 회자가 되고 있다. 

첫째는 김대중의 단식이었다. 김대중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기인 1976년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1976년 3월 8일 연행돼 조사를 받은 후 3월 10일 서대문구치소에 구속수감 되었다. 1977년 3월 22일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김대중은 1977년 4월 14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민주인사들은 김대중을 포함해 문옥환 목사등 국제적인 인권운동가로 알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인권외교를 내세운 미국 카터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유신 정권에 대한 국제적 비판 여론이 형성됐다. 아무튼 이 시기에 김대중은 1977년 진주 교도소에서 면회 및 변호사 접견 제한에 항의하며 6일간의 단식 투쟁을 한바 있다. 한편, 다른 사건 관계자들은 석방됐지만, 김대중은 석방되지 않고 대신 1977년 12월 19일 서울대학교병원 감옥병실로 이감됐다. 유신 정권은 김대중을 석방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김대중을 계속 수감하면서도 김대중의 신병 치료라는 인권 개선 조치를 취하는 것처럼 대외에 선전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1990년에는 김영삼의 통일문주당과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노태우의 민정당이 야합하여 거대 여당을 만들게 된다. 이때 김종필의 합당조건이 내각제 개헌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김대중은 1990년 내각제 반대와 지방자치제 실현을 주장하며 13일간의 단식투쟁을 이어갔고, 그로 인해 1991년 지방선거가 열리게 된다.

한편 12.12와 5.18등 두차례의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전두환은 김대중에게는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김종필과 김영삼등 유력정치인에게는 정치활동 금지라는 이름으로 가택연금을 실시하게 된다. 김영삼은 1983년 전두환에 의해 가택연금 당시 민주화 5개항을 관철시킬 것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다. 민주화 5개항이란 언론통제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5가지 항목을 말한다. 그러나 당시 신군부에 의한 철저한 언론통제의 시절이라 김영삼의 단식투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상도동에서 거주하던 김영삼은 담장 밖을 향해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다. 김영삼은 무려 23일간 단식을 이어가다 주변의 설득으로 중단하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다. 민주주는 위기는 물론이고 민생파탄과 더불어 이제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로 인한 국민들의 생존의 위협까지 처해 있는 상황이다. 과거 김대중 김영삼 시절처럼 국민들에게는 가혹한 상황의 연속이다. 부디 이재명 대표의 단식이 성공하길 바란다.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국제적인 이슈가 되어 대한민국의 상황을 세계에 알릴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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