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안·노란봉투법·4.5일제 등 재계 우려
첨단·핵심 기업에 대한 지원과 규제 완화 약속
국정기획위 출범·경제 사령탑 인사로 드러날 듯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통령 1호 명령,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통령 1호 명령,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개표 결과 49.42%를 얻어 당선이 확정되자마자 임기가 시작된 4일 오전 취임선서 직후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 선언했다.

이어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목만 놓고 보면 지난 2007년 12월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적) 정부를 표방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재계 총수들을 만나 “새 정부는 기업인들이 마음 놓고 기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메시지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덧붙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고, 부당하게 약자를 억압하며, 주가조작 같은 불공정거래로 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등,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켜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상식적 정의와 다를 바 없는 하나의 문장 속에 이 대통령이 이번 선거 기간 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기업 정책이 모두 녹아 있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 셋째)이 후보 시절인 지난 5월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경제5단체 간담회에서 경제5단체장들에게 정책 제언집을 전달 받은 뒤 함께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 대통령,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오른쪽 셋째)이 후보 시절인 지난 5월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대선후보 초청 경제5단체 간담회에서 경제5단체장들에게 정책 제언집을 전달 받은 뒤 함께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윤진식 한국무역협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 대통령,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 (사진=연합뉴스)

◇재계를 긴장시키는 법안과 공약들

그 중 하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일반주주 권익보호’다. 세부 과제로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명문화 ▲일정 비율 이상 독립이사 선임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단계적 확대 ▲대규모 상장회사 집중투표제 활성화 등이 제안됐다.

이 조항들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상법 개정안에 담겨 국회를 통과했지만 지난 4월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의 재의요구권 행사 뒤 국회에서 의결정족수 2/3 문턱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하루 전날인 2일 유튜브 방송인 <한겨레TV>에 출연해 "(취임 뒤) 2∼3주 안에 (상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 상법 개정안 중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조항은 재계가 주주들의 소송 남발과 행동주의 펀드 공격을 이유로 반대해온 법안이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 중 이사 충실의무 확대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가장 우려한다.

이 대통령이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 3조 개정안)도 기업들은 달갑지 않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재계는 이 개정안에서 사용자의 개념을 '근로자의 근로 조건에 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로 정의한 것이 모호해 죄형법정주의에 반할뿐더러 법안이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를 조장할 것을 우려한다.

여기에 이 대통령이 공약으로 제시한 주 4.5일제와 정년 연장도 기업들로선 비용 증가 등 부담이 따르는 내용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장기적으로 주4일제를 도입하되 기업을 지원하며 주 4.5일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 4.5일제는 주 5일 근무에서 금요일 오후를 쉬는 방식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형태의 근무 제도다.

정년 연장도 재계에선 ‘정년 뒤 재고용’ 형태를, 노동계에선 정년 나이를 상향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 밖에도 중대재해 발생 때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기업주를 처벌하도록 한 중대재해법을 완화해 줄 것을 재계는 바라고 있지만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 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다. 완화는 불가하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맨 오른쪽)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등 새 정부 국무위원들은 인상청문 절차를 진행하지 못해 지난 정부 국무위원들만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맨 오른쪽)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등 새 정부 국무위원들은 인상청문 절차를 진행하지 못해 지난 정부 국무위원들만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에 대한 지원과 규제 완화...국정기획위원회서 밑그림 

이 대통령은 또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AI,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지원으로 미래를 주도하는 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선거 공약으로는 A(AI), B(바이오·헬스케어), C(콘텐츠·문화), D(방위·항공우주), E(에너지), F(제조업)를 집중 지원해 빅테크 강국으로 도약하겠다며 이들 산업 육성과 관련해 규제철폐 등 지원을 다짐했다.

AI 3대 강국 진입과 미래 전략 산업 육성을 약속한 만큼 업계는 향후 AI 등 첨단 전략 산업 분야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관세를 무기로 한 보호무역주의까지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어 정부의 뒷받침 없이 개별 기업 수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1호 공약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 계획을 발표하며 반도체 기업 대상 보조금과 세제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반도체특별법을 신속하게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이 산적한 과제를 받아든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인 4일 행정명령 1호로 ‘비상경제점검 테스크포스(TF)’ 구성을 지시하고 이날 저녁 7시30분 용산 대통령실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한국개발연구원, 산업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소속 차관 및 정책 실무자들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대미통상 현안 및 추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 최근 경기·민생의 문제점과 대응책을 논의했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다음 주 초 국정기획위원회를 출범시키기로 했다. 국정기획위원회를 이끌 위원장에는 이한주 민주연구원장이 임명됐다. 당초 정책실장 자리에 하마평이 돌았으나 국정과제 준비부터 실행,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의 시급성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60일 동안 활동할 국정기획위원회와 경제 사령탑 역할을 맡을 경제부총리 인사를 통해 이재명 정부의 기업 정책 밑그림과 관련 법안 개정 방향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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